(사진 제공= 빅히트 뮤직)

 

 [한터뉴스= 정준화 기자]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재편한 BTS와, 대중음악 시상식의 최고 권위를 자부해 온 그래미. 두 이름의 관계가 2026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세계 최정상인데 왜 상은 못 받나"라는 오랜 물음이, 이제는 "BTS가 스스로 그래미를 거부한다"는 초유의 상황으로 뒤바뀐 것이다. 발단부터 현재까지, 두 이름이 걸어온 길을 짚어본다.

 

◇ 무대엔 섰지만, 상과는 거리가 있던 시기 (2019~2020)

 

BTS와 그래미의 인연은 '게스트'로 시작됐다. BTS는 2019년 2월 제61회 그래미에 한국 가수 최초로 시상자로 등장했고, 이듬해 2020년 제62회에서는 릴 나스 엑스의 무대에 합류해 한국 가수 최초로 그래미 무대에 올랐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건이었지만, 이때까지 BTS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초대 손님이었다. 후보석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아직이었다.

 

◇ 갈등의 씨앗, 3년 연속 후보·3년 연속 무관 (2021~2023)

 

변화는 2021년 찾아왔다. 제63회 그래미에서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처음 후보로 지명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레이디 가가 &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밀린 수상 불발이었다. 2022년 제64회에서도 '버터(Butter)'로 같은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고, 2023년 제65회에서는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를 포함해 3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끝내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3년 연속 후보 지명, 그러나 단 한 번의 수상도 없었던 결과. 이 지점에서 팬덤과 평단의 문제 제기가 본격화됐다.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BTS를 그래미가 본상에서 계속 외면한다", "그래미의 백인·서구 중심 편향이 드러난 것"이라는 비판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BTS의 무관은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 시상식의 공정성 자체를 향한 의문으로 번져갔다.

 

◇ 공백기, 군 복무와 활동 중단 (2022 말~2025)

 

2022년 말 진의 입대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차례로 병역을 이행하면서 그룹 활동은 사실상 멈췄다. 자연스럽게 그래미를 둘러싼 논쟁도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2025년, 멤버들이 전역을 마치며 완전체 복귀의 기반이 마련됐다. 다시 한번 그래미의 벽을 두드릴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 반전, 복귀와 동시에 터진 '신설 부문' 논란 (2026)

 

2026년 돌아온 BTS의 기세는 공백이 무색할 정도였다. 복귀 앨범 ‘아리랑(ARIRANG)’으로 미국 피지컬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월드투어를 성사시키는 등 폭발적 성과를 내면서, "이번에야말로 '올해의 앨범(AOY)' 같은 본상을 노려볼 만하다"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기대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흔들렸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가 2026년 6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한 것이다. K팝·J팝·C팝 등 아시아 언어 녹음물을 한데 묶은 이 부문을 두고, "아시아 음악을 별도의 칸에 가둬 오히려 본상에서 아시아 아티스트를 배제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과거 R&B와 랩이 겪었던 '분리 차별'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인정을 넓히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유리 천장'을 제도화한다는 우려였다.

 

◇ 현재, 사실상의 '보이콧' 선언 (2026년 7월 29일)

 

논란은 결국 초유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29일, BTS 멤버 7명은 각자의 SNS에 동일한 성명을 올리며 내년(2027년 2월 예정 제69회) 그래미에 '아리랑'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멤버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기보다, 있는 그대로 들려지고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설 부문을 정면으로 겨냥한 메시지였다. 유력한 본상 후보로 꼽히던 팀이 스스로 출품을 접은 만큼, 이는 사실상 '보이콧'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관계의 성격이 바뀌었다

 

현재 그래미(레코딩 아카데미) 측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하이브 소속의 다른 아티스트들도 유사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주목할 지점은 두 이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쉬워하던 관계"에서, "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참여를 거부하는 관계"로 성격이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정리하면, 오랜 무관이 쌓아온 서운함이 신설 부문 논란과 맞물리며 임계점을 넘었고, BTS는 이제 K팝의 위상을 등에 업고 그래미의 구조적 편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세계 최정상 아티스트가 세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을 향해 던진 이 질문에, 그래미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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