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SM엔터테인먼트)
[한터뉴스= 김연우 기자]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소설을 통해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읽는다. 라이즈(RIIZE)가 신곡 ‘Insomnia’를 통해 선보인 시도다. 음악과 영상에 소설과 일러스트를 더해 하나의 서사를 완성하며, 노래에 담긴 감정을 더욱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라이즈는 26일 싱글 ‘Insomnia’를 발매했다.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절제된 보컬이 어우러진 어쿠스틱 팝으로, 밤이 깊어질수록 선명해지는 누군가를 향한 생각과 그로부터 뻗어 나가는 복잡한 감정을 노래한다. 뮤직비디오 역시 잠들지 못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풀어내며 곡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번 활동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음악 밖으로 확장된 이야기다. SF 작가 천선란이 멤버별 사이드 스토리를 집필하고, 일러스트레이터 노마가 각 이야기에 그림을 더했다. 여섯 멤버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고민을 다루면서도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맞물린다. ‘Insomnia’가 단순히 신곡을 감상하는 경험을 넘어 문학적 상상력을 따라가는 여정이 된 이유다.

여섯 멤버, 여섯 개의 이야기
이번 사이드 스토리는 소희의 ‘닫힌 시간’, 원빈의 ‘닫힌 밤’, 쇼타로의 ‘닫힌 바다’, 성찬의 ‘닫힌 꿈’, 앤톤의 ‘닫힌 소원’, 은석의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것’으로 구성됐다.
소희의 ‘닫힌 시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과 시간이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감지하는 이야기다. 침대가 작아졌다고 느끼고 친구들에 대한 기억도 잃어 가는 소희는 연구자의 관찰 대상이 된다. 버려진 물건들로 만든 비밀 기지와 정오에 멈춘 시계, 뻐꾸기 대신 고래가 등장하는 시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린다. 소희가 실제 나이와 달리 십 대 소년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한 상황과 기억의 혼란을 더욱 부각한다.
원빈의 ‘닫힌 밤’에서는 서로의 이름과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들이 등장한다. 원빈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누구인지, 친구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의 소원과 최면 암시가 이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인물들은 서로의 이름을 되찾아야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관계와 기억의 역설을 보여준다.
쇼타로의 ‘닫힌 바다’는 낯선 장소와 푸른 수족관, 누군가를 기다리는 감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산호와 해파리를 떠올리며 한곳에 머무는 삶과 목적지 없이 떠도는 삶을 생각하는 쇼타로의 모습은 미래를 앞둔 인간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 호수에 나타난 고래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감각은 다른 이야기들과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바다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이 자신의 방향을 고민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성찬의 ‘닫힌 꿈’에서는 J라는 인물이 성찬의 마음을 이해하는 완벽한 연인처럼 등장한다. 성찬은 J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둘이 머무는 세계에서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지, 불완전한 현실을 떠나 지금의 관계에 머물러야 하는지 고민하는 성찬의 모습은 완벽한 관계에 대한 욕망과 그 이면의 불안을 드러낸다. 작품은 누군가와 잘 맞는다는 감각이 영원히 고정된 조건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에 형성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앤톤의 ‘닫힌 소원’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앤톤이 그린 스케치북은 온통 검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바다와 해변, 불가사리와 돌고래 등 그가 본 풍경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그저 검은 그림으로만 보인다. 자신이 보는 세계를 타인에게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앤톤은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에 얻지 못했을 때 고통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망하는 마음 자체를 없애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오는 아픔도 사라질 수 있다고 여긴다.
은석의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것’은 여섯 이야기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공원에서 만난 낯선 소년을 계기로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은석은 타인의 소원을 실현할 수 있다. 그는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은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어 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은석은 친구들이 진실을 알고 고통을 마주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 공간에 머물도록 할 것인지 갈등한다.

천선란의 문학으로 읽는 라이즈의 ‘Insomnia’
여섯 편을 관통하는 핵심은 기억과 소망, 그리고 관계를 영원히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은석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붙잡으려 하고, 앤톤은 소망이 고통을 낳는다면 차라리 바라는 마음을 없애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바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두 인물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관계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는 각 인물의 상황을 개별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게 한다. 은석이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든 공간, 그 안에서 얽히는 각자의 소원과 기억, 그리고 서로를 잊어 가는 현재가 맞물리면서 여섯 이야기는 하나의 큰 서사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오히려 망각으로 이어진다는 역설은 ‘Insomnia’의 몽환적인 분위기와도 어우러진다. 다만 이 세계의 균열을 한 인물의 선택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서로 다른 소망과 인식이 충돌하며 만들어 낸 결과로 읽을 때 이야기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시점과 서술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일부 이야기는 인물 가까이에서 상황을 따라가고, 다른 이야기는 관찰자의 시선을 통해 인물의 행동과 주변 상황을 보여준다. 독자는 인물의 생각을 직접 따라가기도 하고, 인물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나 설명되지 않은 단서를 추리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술의 거리와 정보의 차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야기마다 다른 긴장감을 만들며, 독자가 세계관의 빈틈을 스스로 채워 나가도록 유도한다.
멤버들의 실제 이미지와 성격을 연상시키는 인물 설정도 팬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다. 현실의 라이즈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각 캐릭터의 말과 행동에서 멤버의 특성을 발견하며, 무대 위에서 보여 주는 모습과는 다른 면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허구의 인물과 만나는 순간, 멤버들은 음악뿐 아니라 문학의 언어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여기에 노마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글로 읽은 감정은 시각적인 이미지로 확장된다. 문장만으로는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던 공간과 인물의 분위기를 그림이 보완하고, 독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각 이야기의 정서를 경험한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소설과 일러스트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으면서도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구조다.

K팝과 문학, 만남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K팝과 문학의 협업은 라이즈만의 시도는 아니다. 아티스트와 작가가 만나는 방식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앨범의 주제를 별도의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노랫말에 담긴 감정을 시와 산문으로 확장하는 등 문학을 통해 음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넓어지고 있다.
키키(KiiiKiii)는 미니 2집 ‘Delulu Pack’과 연계해 작가 이슬아의 이야기 ‘드레스 입고 달리기’를 선보였다. 평범함을 생존 전략으로 삼아 온 화자가 스스로를 당당하게 ‘공주’라고 부르는 친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인물은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의 비밀스러운 시간대를 통과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감추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앨범이 지닌 개성과 상상력을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레드벨벳 조이는 첫 번째 미니앨범 ‘From JOY, with Love’를 통해 시인 차정은과 협업했다. 사랑을 주제로 한 네 편의 글을 앨범 프로모션 콘텐츠로 선보였으며, 장난스러운 사랑과 우정, 자기애, 낭만적인 사랑 등 서로 다른 감정을 다뤘다. 하나의 앨범이 품은 사랑의 여러 모습을 시적인 언어로 전달하면서 음악을 듣기 전부터 앨범의 정서에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문학과 K팝의 만남은 하나의 정해진 형식에 머물지 않는다. 앨범의 주제를 별도의 이야기로 만들거나, 노랫말에 담긴 감정을 시와 산문으로 풀어내는 등 아티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음악을 중심에 두면서도 문학이라는 다른 예술의 언어를 빌려 팬들이 작품을 경험하는 경로를 넓히는 것이다.

노래를 넘어, 감정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라이즈는 서면 인터뷰에서 ‘Insomnia’의 감상 포인트와 의미를 전했다. 원빈은 노래가 반드시 위로만을 건넬 필요는 없다며,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앤톤은 ‘I stay up all night till I see the morning’이라는 가사를, 은석은 멤버들의 화음을 킬링 파트로 꼽았다. 특히 은석은 노래 속 ‘너’처럼 위로를 건네는 존재로 브리즈(BRIIZE)를 언급하며 팬들을 향한 마음을 전했다.
문학과 K팝이 만나는 방식은 점차 다채로워지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K팝 역시 음악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두 분야의 만남은 각자의 영향력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으로는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문학으로 풀어내고 문학을 접하는 새로운 통로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라이즈의 ‘Insomnia’는 음악과 소설, 일러스트를 하나의 서사로 엮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K팝이 문학과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문학이 음악을 통해 더 넓은 독자와 청자를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이 일회성 시도를 넘어 꾸준히 이어져 한국 문학과 K팝이 서로의 매력을 확장하고, 나아가 한국 문화 전반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물결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yeonwoo38@hant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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