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터뉴스 = 강수영 기자] 엔하이픈(ENHYPEN)이 6년째 뱀파이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이 일관성의 진짜 힘은 '유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주'에 있다.
엔하이픈은 2020년 데뷔 앨범 'BORDER : DAY ONE'을 시작으로 다크 판타지 서사를 쌓아왔다. 겉핥기식 콘셉트가 아니었다. 음악과 비주얼, 퍼포먼스, 나아가 앨범 기획 전반에 뱀파이어 코드를 정교하게 입히며 팀의 정체성을 다졌다. 6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는 동안 뱀파이어는 엔하이픈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단어가 됐다.
주목할 지점은 엔하이픈이 뱀파이어라는 뼈대는 고정하되 그 안의 질감은 계속 바꿔왔다는 데 있다. 데뷔 초기의 뱀파이어는 소년들의 정체성과 성장을 비추는 은유적 장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BLOOD' 시리즈를 기점으로 서사의 결이 달라졌다. 피로 연결된 인연을 전면에 내세우며 맹목적인 사랑과 강렬한 욕망을 직관적으로 노래했다. 같은 뱀파이어라는 소재 안에서도 매번 다른 이야기를 꺼내온 셈이다. 정원은 지난 1월 일곱 번째 미니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뱀파이어 서사를 데뷔 때부터 이어왔는데, 엔하이픈과 뱀파이어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연습생과 아이돌 사이에 있는 엔하이픈이 인간과 괴물 사이에 있는 뱀파이어와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콘셉트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팀의 서사와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이들의 앨범은 동일한 테마 안에서도 늘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며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번 여덟 번째 미니 앨범 'THE SIN : BLISS'의 변주는 '역설'이다. '죄악(SIN)'과 '축복(BLISS)'이라는 상반된 키워드를 나란히 놓았고, 타이틀곡 'Bloody Paradise'는 '핏빛 낙원'이라는 모순된 제목으로 도피라는 위태로운 상황을 낙원으로 뒤집는다. 추격과 도피가 이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는 연인의 이야기다. 여기에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의 흥겨운 리듬을 입혀 어두운 세계관을 밝고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앨범은 10개 트랙이 하나의 '미스터리 쇼'처럼 짜인 콘셉트 앨범 형식으로, 첫 트랙 'Two Fools'부터 마지막 '가려진 진실'까지 도피 연인의 서사가 촘촘하게 이어진다.
엔하이픈의 변주는 음악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관을 오프라인과 참여형 콘텐츠로 꺼내온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콘셉트 시네마', 앨범 서사를 공간으로 구현한 '로맨스 하우스', 뱀파이어 사회의 가상 언론 '뱀파이어 나우'가 대표적이다. 올해 초 일곱 번째 미니 앨범 발매 당시 진행한 헌혈 캠페인은 흡혈이라는 설정을 현실의 선행으로 뒤집은 재치 있는 기획이었다. 이번 앨범으로는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음악 체험형 전시 'House of Vampire'를 연다. 관람객이 엔하이픈과 같은 혈족이 되었다는 설정의 초대장을 받고 뱀파이어 저택에 입장하는 콘셉트다.
제이크는 같은 인터뷰에서 "엔하이픈이 이번엔 강렬한 힙합곡, 전에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는데, 뱀파이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뼈대가 오히려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됐다는 얘기다. 6년간 엔하이픈이 지켜온 건 뱀파이어라는 프레임 하나였다. 그 위에서 서사도, 장르도, 팬들이 즐기는 방식도 매번 새롭게 바꿔왔다. 흔들림 없는 일관성과 지치지 않는 변주가 공존한다는 것. 그것이 엔하이픈의 6년이라는 시간을 대체 불가능한 무기로 만들었다.
grace@hant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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